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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세이야-로스트캔버스-명왕신화] 문화 충격은 상호이해의 첫발

 ~culture shock~


 

허공을 가르는 주먹이 돌풍을 일으키고 땅을 박찬 발돋움질이 대지를 뒤흔든다. 둔중한 충돌음이 울린 직후 흰개미에게 파먹힌 고목과 같던 돌기둥 하나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화려하게 흩어지는 돌조각들을 피해 황급히 물러서던 기둥 살해자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은 상대의 반격을 받고 나가떨어진 끝에 또 다른 돌기둥의 허리를 꺾어버렸다. 부러진 기둥의 상반신과 함께 나뒹군 소년은 벌떡 일어나 입안에 들어간 흙먼지를 힘차게 뱉어내며 재차 태세를 정돈했다. 예리한 파공음을 내며 연속공격이 들어온 것은 그 직후였다.

게자리의 황금성투사 마니골드는 우당탕 떨어지고 날아가고 부딪치는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그늘을 골라 걷고 있었다. 피할 수도 있는데 굳이 잘 달군 철사마냥 내리꽂히는 뙤약볕 밑을 활보하는 것은 취미가 아니다. 외벽이고 내벽이고 간에 거의 허물어지다시피 한 투기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일상적인 소음과 비명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드문드문 산재한 그늘을 잇는 이동로를 산출하는 편이 훨씬 건설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 벽을 벗어나면 한동안 그늘이 전혀 없다. 그냥 광속으로 달릴까 하던 마니골드는 문득 자신의 발소리 외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걸음을 멈추자 새삼 정적이 감돌았다. 멀리서 아스라한 웅성거림이 드문드문 들릴 뿐, 방금 전까지 투기장 안에서 떠들썩하게 날뛰던 소리들은 뚝 끊겼다. 누가 큰 사고라도 쳤다면 오히려 소란이 커져야 정상이다. 마니골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허물어진 외벽 사이로 투기장 안을 들여다보았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시점에서 대체로 예상할 수 있었지만 돌이라도 된 듯이 뻣뻣하게 굳어있는 성투사 후보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보니 대부분의 시선이 한 곳으로 고정된 상태였다. 자연히 마니골드의 시선도 그쪽으로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우와아아아앗!!”

마치 얼어붙은 수면 위에 벼락이라도 떨어진 양 정체되어 있던 공기가 단박에 깨어졌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듯 파문은 순식간에 일파만파로 확산되어 최초로 소리를 낸 것이 누구인지 분별하기는 어려울 듯 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며 우왕좌왕하는 무리에서 몇몇 후보생들이 재빠르게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면서 뭐라뭐라 외쳐대는데 미안합니다! 라든지, 이 녀석이 뭘 모릅니다! 라든지, 제대로 교육시키겠습니다! 라든지, 또 죄송합니다! 인 것 같았다. 거의 비명이나 절규 수준의 사죄를 남기면서 사라져 가는 10살 전후의 후보생들 중에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끌려가는 아이 하나가 얼핏 눈에 띄었다.

“새끼 고양이?”

무심코 입에 담은 소리는 투기장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뒤틀리고 있던 탓에 생각 외로 크게 울렸다. 한 덩어리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바람에 부자연스럽게 텅 빈 공간 바깥으로 슬슬 몸을 빼던 후보생들은 마니골드의 등장에 눈을 번쩍 빛냈다. 사복 차림이어서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후보생도 있었지만 분위기를 바꿀 계기가 왔다는 것이 중요했다. 후보생들은 서로에게 눈짓을 해 가며 한 발 한 발 옮기다 마니골드가 투기장 안에 발을 들여놓은 것을 신호탄 삼아 일제히 뜀박질을 시작했다. 한바탕 일어난 먼지구름이 대충 가라앉은 후 투기장 안에는 단 두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너희들, 대체 애들한테 뭘 했어?”

마니골드는 시야를 가리는 흙먼지에 손사래를 치며 물었다. 의문형이 아니라 확신형이다. 훈련을 하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투기장 내벽의 관람석 쪽에 덩그러니 서 있는 둘은 후보생들이 후환을 두려워해 달아날 정도의 실력과 신분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피해자이건 가해자이건 상관없이. 투기장과 관람석을 나눈 난간을 훌쩍 뛰어넘은 마니골드는 두 황금성투사의 얼굴을 번갈아 살펴보곤 팔짱을 끼었다.

“시온은 말할 상태가 아닌 것 같으니 설명은 동호, 네가 해 봐.”

“어, 나?”

지명된 저울자리의 동호는 힐긋 곁눈질을 했다가 그만 쓴웃음을 지었다. 언제나 생기발랄하게 빛나는 양자리의 황금성의가 주인의 침울한 소우주에 호응했는지 칙칙하게 늘어 져 있다. 푹 수그린 시온의 머리 위에만 먹구름이 겹겹이 쌓여 있는 듯한 양상이다. 자칫 잘못하면 땅속으로 푹 꺼져버릴 것 같은 친구를 염두에 둔 동호의 어조는 적이 조심스러웠다.

“얘기하자면 짧긴 한데….”

그건 정말로 짧은 이야기였다. 황소자리의 황금성투사 알데바란의 부탁으로 후보생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던 동호와 시온에게 몇몇 후보생들이 인사를 해 왔다고 한다. 그 중에는 성역에 온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은 소년, 레굴루스가 있었다. 사수자리의 황금성투사 시지포스가 데려왔다는 점과 이미 수호별자리가 확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황금성투사 사이에서는 유명한 아이였다. 현재 황금성투사 중에서 최연소인 시온과 동호와는 시온의 수호궁이 십이궁의 첫 관문인 점도 있어 비교적 낯이 익은 사이이기도 했다.

그 레굴루스가 시온을 빤히 바라보더니 지금 처음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고 한다. 악의라곤 티끌만큼도 없는 해맑은 얼굴로.


「시온은 이상한 눈썹이었구나.」


풋 하고 공기가 새었다. 이어 사양 없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그에 따라 시온의 머리 위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더욱더 무거워졌다. 동호가 침착하라고 등을 토닥여주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옆에 있던 녀석들이 사색이 되어 도망치더냐.”

시온이 침체하거나 말거나 마니골드의 웃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친구의 기분이 점점 하강하는 것을 피부로 느낀 동호가 넌지시 말려보려다 그냥 포기한다. 내키는 대로 실컷 웃는 마니골드는 마지막으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 필사적으로 몰려나간 후보생들의 뒷모습을 떠올리니 또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연상의 저력으로 의미와 형태가 있는 소리로 변환했다.

“후보생을 위협하는 황금이라, 좀처럼 없는 광경이었을 텐데 직접 보지 못해서 유감인 걸.”

“마니골드!”

약간의 동의와 약간의 염려와 약간의 초조함이 배어든 동호의 제지 소리에 마니골드는 어깨를 으쓱이고 화제의 방향을 바꿨다.

“고작 그 정도에 내뺀 건 한심하지만 혼자 내버려 두고 가지 않은 건 칭찬할 만 한데.”

“그건 맞아.”

“시지포스가 알면 기뻐하겠군.”

“다른 후보생들과 그럭저럭 사이좋은 것 같아. 기본적으로 사교성은 있는 편이랄까.”

“그것도 그렇고, 들고양이가 겨우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니까.”

동호는 잠시 눈을 깜빡거리다가 퍼뜩 깨닫고 수긍했다.

성역에 온 직후의 레굴루스는 상처 입은 야수처럼 경계심이 강한데다 사람들의 얼굴이 다 똑같아 보인다고 하여 다루기가 좀 곤란한 아이였다. 이미 소우주에 눈을 뜬 상태였고 레오의 황금성의까지 얽혀 사람들과 어울리기는커녕 악의적으로 경원시되었던 반동일 것이다. 시지포스조차 처음엔 성의의 날개와 헤어밴드가 구별 포인트였을 정도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다양한 접촉을 통해 다듬어지지 않은 거침은 산뜻한 천진난만함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식적인 면이나 감정의 기준이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어긋난 느낌은 있어도 점차 다른 후보생들과 어울려 집단 훈련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대할 때 어지간히 가까운 사이가 아닌 한은 다들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있다는 정도 밖에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여전했다. 그래도 레굴루스는 노력했고, 그것이 드디어 작은 성과를 이룬 것이다.

“아직 배워야 할 일투성이지만. 인식도 적응도 이제부터야.”

그 자신도 성역에 왔을 당시 털을 바짝 세운 고양이와 같은 상태였다는 자각이 있는 마니골드는 앞으로 레굴루스가 받을 문화 충격을 헤아리며 뒷머리를 긁었다.

성역은 거대한 인종의 전시장이다. 각양각색의 문화와 풍습을 지닌 사람들이 아테나의 이름 아래서 복작거리는 곳이다. 게다가 성투사란 아테나를 지켜 지상을 노리는 신과 싸우는 전사를 이르니, 그 상당수가 인간과는 동떨어진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어 그로 인해 받는 충격이 다른 무엇보다도 압도적이 되기 쉽다. 영역이 완전히 다르다. 자신이 살아온 세계가 얼마나 작았는지를 통감한다.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던 절망을 뒤집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 순간 세상의 색이 바뀌었다.

사람이 사는 거야 다 비슷한 것이라고, 세세하고 사소한 차이점에 신경을 쓸 여유가 생긴 것은 의외로 빨랐지만.

“그러고 보면 나도 성역 생활 시작하고 나서 최초로 ‘어, 저거 이상한데?’라고 생각한 것이 우리 영감님 눈썹이었던가.”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마니골드의 중얼거림에 시온의 어깨가 움찔 흔들렸다.

“뭐, 둘러보면 그 이상으로 괴상한 사람도 많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지만.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니까.”

이어진 말에 또 움칠움칠 흔들린다. 마니골드는 눈썹은커녕 얼굴도 보이지 않게 숙인 시온의 머리에 손을 턱 얹고는 쾌활하게 말했다.

“그러니 이 정도 일로 애들 겁주는 암울한 소우주 풍기지마. 쪼잔해 보인다.”

“그래, 시온. 레굴루스가 무슨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잖아.”

동호도 옆에서 거들었다.

“단순히 자기하고는 형태가 다르다는 걸 제대로 인식했을 뿐이고.”

“아마 면전에서 들은 건 처음일 테지만 그런 거에 하나하나 충격을 받는 심약한 정신으로 황금성투사를 자칭할 수 있겠어? 뭣하면 너네 영감님한테 고자질해 줄까?”

“…그만둬.”

시온은 머리 위에 얹힌 마니골드의 손을 치우며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부루퉁하니 볼이 부은 얼굴이지만 딱히 기분이 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좋아 보이지도 않았지만.

“시온, 괜찮아?”

동호의 물음에 시큰둥이 고개를 끄덕거린 시온은 어딘지 불만스러운 눈으로 마니골드를 쳐다보았다. 마니골드는 내심 웃으며 모른 척 미끼를 던졌다.

“번지수가 틀렸다.”

“같은 죄잖아.”

“그런가?”

“별로 화가 났다거나 충격을 받았다거나 하는 건 아니야.”

“그런 것 치곤 말투가 어색하니 무뚝뚝한데?”

시온의 동그란 눈썹이 꿈틀 일그러졌지만 따로 반론은 하지 않았다. 자기 귀에도 그렇게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억양이 평탄한 것은 나름대로 제어에 성공했다는 증거였지만 한편으론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했다. 유쾌한 표정의 마니골드와 벌레 씹은 얼굴의 시온, 어느 쪽이 우세한지는 뚜렷했지만 열세 측에 얌전히 승복할 생각은 없는 듯 했다. 어쩌다보니 목격자의 위치가 된 동호는 흥미진진함 반 조릿조릿함 반으로 대화의 추이를 지켜보았다.

“레굴루스한테 타의가 없다는 건 알아.”

시온은 눈을 반쯤 내리뜬 채 마니골드를 째려보았다.

“너한테는 있겠지만.”

“다른 생각이라는 것이 악의적인 고의와 동의어는 아니라고? 나도 들고양이도.”

적지 않게 비꼼이 함유된 말이었지만 마니골드는 장난스럽게 긍정하는 것으로 부정해버렸다. 시온의 볼이 좀더 부어올랐지만 마니골드는 본 체 만 체 부러 후보생들이 달아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녀석이 한 마디에 둘이나 셋 정도의 의미를 집어넣거나 읽어내려면 꽤 걸리겠지. 그렇지만 화내지 않은 것 치곤 애들 너무 겁준 거 아니냐?”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갑작스러워서 어안이 벙벙했을 뿐이라고.”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는 건 아는데 말이다, 분위기라는 건 말이 아니어도 전해지는 법이거든. 애들은 그런 거에 또 민감하지.”

“눈썹 이상하다는 말에 충격받은 건 아니라니까. 타고난 생김새나 자란 환경이 다른 걸 다르다고 느끼는 건 당연하니까.”

“부정의 부정의 긍정이라지, 아마?”

“아냐!”

“그럼?”

“그, 그게….”

단호하게 부정해 버린 것이 후회되는지 잠시 머뭇거리던 시온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렇게 허둥거리며 도망친다는 건….”

“건?”

마니골드는 틈을 주지 않았다. 결국 시온은 자포자기로 외쳤다.

“조건반사처럼 도망친 건 그 말에 내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는 거잖아?”

“그렇겠지.”

“그거 다들 내 눈썹이 이상하다고 인정하고 있다는 거 아냐!”

너도 제 입으로 자백했고! 라며 주먹을 불끈 쥔 시온의 얼굴은 어느 샌가 발그레하니 달아올라 있었다.

특정지역 출신의 몇 명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라면 그냥 문화의 차이라고 넘길 수 있다. 그러나 한 두 명이 아니라 대여섯이라면? 수십이라면? 수백이라면? 각지에서 모여온 절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어지간한 오리하르콘 신경이 아니고서야 보편성이나 상대성인 면을 들어 납득하기 어려워진다. 소수라고 해서 설움에 겨운 건 아니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화를 입을 지도 모른다고 여긴다는 게 문제였다. 그 사실 자체가 결코 칭찬이 아닌, 오히려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마니골드는 반사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가 아예 손으로 틀어막았다. 한순간만 늦었어도 아까 못지않은 폭소가 터졌을 것이다. 마니골드는 자신이 광속의 움직임을 가진 황금성투사라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여기서 웃으면 시온의 기분이 결정적으로 뒤틀려버린다. 시온의 기분이 좀 상한다 한들 성의 수리 문제를 빼면 무서울 거 하나 없지만 동문으로서 최소한의 배려다.

그러나 본인이 말했던 바와 같이 구태여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더구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필요 또한 요만큼도 느끼지 않고 있다. 결과, 허리를 굽히고 어깨를 떨어가며 열심히 웃음을 참고 있다는 걸 전신으로 표현하는 마니골드의 태도에 시온의 혈압은 큰 폭으로 상승했다. 후보생은 물론이고 청동이나 백은도 지금의 시온을 보면 삼십육계 줄행랑을 칠 것이다. 허나 마니골드 상대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쏘아본들 신통찮을 결과가 나올 것 같지도 않은 비난의 화살은 애꿎은 목격자를 새로운 표적으로 정했다.

“동호….”

조용히 흐른 소리와는 달리 스산한 기세로 쓰윽 고개를 돌린 시온은 나지막하게 캐물었다.

“설마 너도?”

매우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였다. 별안간 튄 불똥에 당황한 동호였지만 지금까지 쭉 지켜봐 온 덕에 대응이 빨랐다.

“아니, 난 중국에서 그리스까지 오는 동안 별의별 사람들을 봤으니까 그런 눈썹이야 뭐….”

그렇지만 말끝이 흐릿하다. 시온이 못 미더운지 재차 따진다.

“정말로?”

“정말이야.”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그야 뭐 내가 살던 동네에선 없었으니까 특이하다는 정도는….”

“그것 봐!”

“그것 봐, 는 뭐가?”

“생각한 적 있잖아!”

“다른 걸 다르다고 한 것 뿐인 걸. 그러는 너도 변발이 수상하다고 한 적 있으면서!”

“변발은 명백하게 수상하지!”

“뭐라고?!”

이것이 지상을 수호하는 성투사의 정점에 서는 최강의 황금성투사끼리의 대화다. 아옹다옹하는 소리가 점점 높아질수록 우정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귀엽지 않은 녀석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노는 걸 보니 제법 귀엽군, 하고 마니골드는 입을 막은 채 히죽거렸다. 황금성투사인데다 행동거지가 썩 어른스러운 탓에 간과하기 쉽지만 시온과 동호는 현재 열 서넛의 소년이다. 다시 말하면 질풍노도의 사춘기, 굴러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울거나 웃을 수 있는 이유를 서른 가지 쯤 댈 수 있는 시기인 것이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 그 말을 성투사에게 적용하기엔 싸움에 대한 개념도 규모도 대상도 너무 다르지만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은 대동소이할 터이다. 어쨌든 그들도 인간이니까. 그렇지만 쌍방의 폭발로 끝나게 되면 여러 모로 귀찮다. 마니골드는 느긋하게 소우주를 불태웠다. 말씨름이 차츰 격화되어 시온의 주변에 자잘한 별빛이 모여들고 동호의 등 뒤로 거대한 맹수가 솟구치려는 찰나였다.

“슬슬 진정해라, 너희들. 너무 시끄럽게 굴면 적시기로 보내버린다?”

영혼만 날려줄 테니 거기서 천일전쟁 벌여도 괜찮아~라고 덧붙인 말에 쩌억쩌억 지면을 좀먹어 들어가던 균열이 우뚝 멈췄다. 가벼운 목소리였지만 심상찮은 소우주가 담겨 있다. 이승에 남은 육체는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의 제시이며, 옛날에 한 번 성사될 뻔한 현실성 있는 위협이기도 했다.

“그래그래, 좋아. 착하다.”

시온과 동호의 공격적인 소우주가 서서히 사그라지자 허리에 손을 얹은 마니골드가 강아지라도 어르듯 칭찬했다. 물론 고의적이다. 협박에 굴복한 두 소년의 얼굴엔 본의가 아니라는 불만이 한가득했다.

“이상하다고 말하는 측과 이상하다고 듣는 측이 동일한 기분일 수는 없지만 서로 주고 받았으니까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지?”

“난 손해야.”

“나야말로.”

“응? 공평하다고?”

마니골드가 웃는 낯으로 치켜세운 집게손가락 끝에 푸르스름한 불꽃이 어리자 시온과 동호의 입이 쑥 들어갔다.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던 불꽃의 위협이 사라진 것은 두 소년이 서로의 눈치를 보다 체념한 듯 소우주를 완전히 가라앉힌 뒤였다. 마니골드는 짐짓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요컨대 드문가 흔한가의 차이라는 거지. 많고 적음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 쟈미르에 가면 오히려 나나 동호 같은 눈썹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겠냐고. 기껏해야 그런 정도의 일이야.”

이론상은 그렇다. 현실적으로도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허나 그것이 단순한 정보의 상태에서 감정까지 움직일 수 있는가 하는 일은 별도이고, 그렇게 따로 노는 감정에 자극받은 시온의 이성은 지금의 정보를 토대로 또 다른 돌파구 뚫기를 시도하고자 했다.

“그럼 유즈리하나 토쿠사가 이쪽에 오면?”

“너랑 똑같은 눈썹이 늘어나서 희귀성이 좀 떨어지겠지. 하지만 토쿠사는 어쨌든 유즈리하가 성투사가 되면 가면을 쓸 텐데?”

마니골드의 냉정한 지적은 시온의 자그마한 발버둥을 가차 없이 동강 냈다. 그래도 뭔가를 더 말하려던 시온은 입속으로 웅얼거리다가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어버렸다. 자기혐오다. 성역에도 가면을 쓰지 않은 여성은 있다. 그러나 여신을 제외하면 모두 비전투원. 유즈리하는 자긍심 높은 쟈미르의 전사를 목표로 삼고 있다. 전투 이외의 직무를 맡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순위로 따지면 까마득하게 후방에 위치할 것이다. 성투사가 될 것을 선택할지 어떨지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애초부터 지망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적인데다 불순하기까지 한 동기다.

낙담하여 축 늘어진 시온의 어깨 위로 동호가 한 손을 얹는다. 어쨌든 지금의 중점은 시온의 눈썹이다. 머리에 열이 오른 시온을 상대하느라 덩달아 뜨거워졌지만 핵심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동호는 이미 평상심을 되찾고 있었다. 그 표정에 왠지 모를 후련함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빼면 처음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다.

“거꾸로 생각하면 시온 네가 있으니까 나중에 그 애들이 이상한 눈썹으로 몰릴 가능성은 적다는 얘기지. 내가 우리 영감님한테 익숙해져서 너나 쟈미르 사람들 보고 아무 생각 안 한 것처럼.”

마니골드는 시무룩하니 시선을 외면한 시온의 귀가 쫑긋 서는 걸 놓치지 않았다. 정말 뜻밖의 발견이지만 반응이 바로바로 나오는 것이 퍽 귀염성이 있다. 지금의 말이 한 줄기 서광이 될 지, 지푸라기 한 가닥이 될 지, 썩은 동아줄이 될 지는 모르지만 모종의 자극이 된 건 분명했다. 시온의 머리 위로 다시금 내려앉으려던 먹구름이 소우주가 생성한 기류에 실려 훌렁 날아가 버렸으니까. 동호가 뭔가를 느꼈는지 미심쩍은 눈으로 시온을 보고 있었지만 거기까지 상관할 생각은 없는 마니골드는 휙 돌아서서 손을 흔들었다.

“도망간 애들이나 찾아서 훈련 재개시켜. 소 녀석이 신경쓸 테니까. 그리고 들고양이 녀석한테는 일자눈썹이나 갈래눈썹이나 민둥눈썹을 봐도 손가락질은 하지 말라고 해라. 야생이니까 성별은 잘못하지 않겠지.”

일자와 갈래와 민둥에 성별. 시온과 동호는 무심코 얼굴을 마주 보았다가 서로가 각각의 단어에서 연상한 광경이 자신과 같은 것임을 확신하곤 피식 웃었다. 이미 익숙해져서 그렇지 차근차근 생각하면 진짜 괴상한 사람투성이다. 외모도 성격도 능력도. 실은 그 정점에 있는 것도 틀림없이 황금성투사일 것이다. 생각난 김에 그 사람은 어쨌고 저 사람은 저랬다고 속마음을 하나 둘 폭로하기 시작한 시온과 동호를 뒤로 한 마니골드는 미련 없이 투기장에서 빠져나왔다. 광속의 움직임과는 다른, 형체 없는 유령과 같은 기척만을 남겨 놓고서.

그 후, 시온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후보생들에게 닥치는 대로 스타라이트 익스팅션을 걸어 강제이동시키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마니골드는 땡볕을 감수하며 설교한 보람도 없다고 투덜거렸다. 강경수단으로 나갔다 함은 원만한 의사소통을 포기하고 힘으로 현실을 인식시키겠다는 의지표출이다. 귀엽다고 하면 귀엽고, 귀엽지 않다고 하면 귀엽지 않은 해결방식이었다. 가끔 자신을 돌아보며 웃다가 구시렁거리기를 반복하는 제자를 괴이쩍게 여긴 교황 세이지가 무슨 일이냐며 추궁해 왔지만 내용이 내용인지라 대충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어떤 운명이 닥쳐올지 까맣게 몰랐던 마니골드는 스승의 집요한 추궁에서 벗어나느라 정작 시온에 대해서는 깜빡 잊고 말았다.


그리하여 다음날 아침이 밝았으니,


“시이이이오오오오온~~!!!”


유일하게 이러한 사태를 예감하고 있었던 동호는 거해궁에서 메아리치는 노성을 듣고 먼 산을 바라보며 눈썹의 명복을 빌었다.




by 벽효-아리수 | 2009/08/07 21:19 | ★ 패러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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