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15일
고창 선운사 동백숲
2008년 4월 10일경의 선운사 여행일기
몇 년 동안 봄꽃구경 봄꽃구경 노래만 부르다가 알바도 잘렸겠다, 놀러가는 건 역시 평일이지~하면서 그나마 얼마 남지도 않은 비상금을 투자해서 반쯤 홧김에 기차표를 지르고 당일치기로 훌쩍 갔다왔다. 혼자 여행 간다니까 이미 한 차례 친구들끼리 내지 계모임으로 봄놀이를 다녀왔던 식구들의 그 얄싸~한 눈초리들이란. 쳇.
당일치기 가능한 코스를 뒤져본 결과, 목적지는 전북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숲으로 낙착. 실은 알바 시작하기 전에 슬금슬금 계획을 세워보고 있었는데 저놈의 홧김이 겹쳐서 거리가 배로 뛰어버렸다는 사실. 어차피 봄마다 매번 부르던 꽃타령은 동백과 매화였고. 근데 매화마을들은 좀 멀어서리... 동백은 한 20여년 전만 해도 수도권에서도 제법 군락이 있었던 듯한 기분이 드는데, 북방한계선이 전북이라고라? 물론 북방한계선 위에 한 그루도 자라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지만 뭔가 갸웃? 하는 느낌이다. 20년 동안 기온이 얼마나 올랐지? 뭐, 10살 전후의 기억이니까 좀 풍성한 나무 서너 그루 정도 모여 있었던 걸 뻥튀기해서 미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덧붙여서 대학 시절 남도답사 때의 추억이 바람을 넣어 동백과 개나리와 수양버들의 조화가 상당히 강렬한 꿈을 형성하고 있었다. 꽃보라 휘날리던 쌍계사 십리벚꽃길도 적당히 인상적이었지만 벚꽃은 여기서도 얼추 볼 수 있으니까. 동백은 그게 안 되는 만큼 미련의 크기로 따지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헌데 기차표를 예매한 직후부터 쏟아지는 빗줄기. ㅡㅡ;; 환불할까 다음날로 교환할까 좀 고민했지만 기왕 지른 거, 그냥 가자! 빗속의 꽃구경도 운치 있잖아. 오전 지나면 갠다는 일기예보도 있으니 희망을 품고 취침. 그리하여 이슬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는 아침 6시 5분 용산발 무궁화호를 타고 출발. 예매할 때 기차표를 살펴보니 무궁화가 너무 없어서 좌절했다. 게다가 KTX 너무 비싸! KTX 편도 한 장이면 무궁화 왕복표를 끊을 수 있잖아! 난 말이지, 경춘선 통일호 애용자였다고! 선착순 비둘기도 얼마나 좋아했는데. 무궁화는 정말 시간이 없거나 어쩌다 여유를 부리고 싶을 때 정도 밖에 타지 못했단 말이야!! 뭐, 지금은 경춘선도 무궁화로 도배가 되었지만. 경춘선에서 새마을을 보게 되는 날은 무궁화의 퇴역날이 아닐런지.
출발 후 일단 좀 졸다가 조치원을 지나면서부터 눈 게슴츠레 뜨고 열심히 바깥풍경을 구경했다. 호남선이든 장항선이든 경부선이든 조치원 밑으로는 별로 간 적이 없기도 하고, 일단 복숭아의 고장인 연기군이니 잘 하면 복사꽃 정도는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결국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도 찻길 가로수나 근처의 산들에 요런조런 꽃들이 이쁘장하게 피어 있어서 눈요기로는 그만이었다. 차창에 길다란 무늬를 새기는 빗방울과 하늘 가득 드리워진 흐릿한 구름이 못내 불안했지만 점점 구름이 걷혀가는 것이 보였다.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아래쪽 구름과 왼쪽으로 움직이는 위쪽 구름과 뒤에서부터 밀려 주름이 잡힌 구름과 엿가락처럼 늘어나며 끊어질 듯 말 듯 궤적을 그리는 구름과 그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 먼지를 한 꺼풀 벗겨낸 후라 다들 때깔이 참 곱더라.
신탄진이었나, 봄꽃축제라며 띄워놓은 플래카드와 애드벌룬 밑에 분홍색 꽃구름이 소담하게 퍼져 있었지만 길이 갈라지는 바람에 얼마 보지 못하고 바이바이. 9시 50분경 정읍역 도착. 기차에서 딱 내리니까 풀냄새, 꽃냄새, 흙냄새, 물냄새가 어우러진 간만의 시골(...) 향기가 싱그럽더라. 정읍에서 선운사 가는 직통버스가 11시에 있다는 건 알고 갔지만 버스터미널을 몰라서 역앞 관광안내소로 직행. 지도 펼쳐놓고 설명을 들은 후, 버스 출발할 때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정읍천 벚꽃가로수 한 번 보고 가라는 권유를 받고 벚꽃길 구경을 하기로 했다. 전날 비가 와서 꽃이 별로 안 남지 않았을까 걱정한 안내소 직원은 전화까지 해서 아직 멀쩡하다고 확인해 주었다. 친절 감사. 해서 버스표 끊어놓고 룰루랄라~ 보러 갔더니 만개가 살짝 지난 정도의 벚꽃이 개천을 따라 쭈욱 늘어서 있었다. 그건 좋았는데... 역시 전날 비바람으로 떨어질 만한 녀석들은 대부분 떨어졌는지 제법 강한 바람이 불어도 꽃잎이 휘날리지 않아 다소 썰렁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11시 버스를 타고 정읍버스터미널을 출발. 가는 길에 드문드문 동백이 보였다. 정읍시내에서도 몇 번인가 보여서 역시 동네가 다르긴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네에서 골목길 걷다가 담장 너머로 장미 발견하는 빈도의 반 정도는 보였으니까. 근데 전부 장미로 착각할 수준의 겹동백. 난 보통 동백이 좋은데.... 혹시 선운사 동백나무도 전부 겹동백인 거 아니야? 라는 작은 불안을 안은 채 선운사 도착. 다행히 선운산도립공원 앞에 늘어선 관광표지의 동백은 겹동백이 아니었다. 그리고 잠시 잊고 있었지만 선운사 하면 국내 최대의 꽃무릇 군락지. 봄에도 가을에도 빨간 꽃으로 승부하는 선운사?
입장료 2500원을 지불하고 팜플렛 하나 들고 선운사로 올라갔다. 2000원 할인해 준다는 투표확인증을 사용할까 했지만 앞에 있던 아저씨가 이미 gg 먹어서 앗사리 단념했다. 쳇. 입구 안쪽의 부도들은 돌아오는 길에 보기로 하고, 우선 천왕문을 통과해서 경내로 들어가며 팜플렛을 펼쳤다가 으잉? 하고 만 것이, 사천왕 소개문이 반 정도 엉터리인 것이 아닌가!! 다행히 방위 설명은 맞지만 왜 증장천이 용을 붙들고 있으며, 어째 지국천이 칼을 들고, 뭣 때문에 광목천이 탑을 가진데다, 무슨 까닭으로 다문천이 비파를 켜야 하는 건데! 공부한 지 하 오래되어서 가람배치나 건축양식이나 수인이나 협시보살이나 탑의 구조나 하는 건 전부 까먹었지만 사천왕의 기본 특징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고! 뭐야, 이거!! 팜플렛 누가 만들었어!! 설마 절에서? 관리소? 위탁? 검색 한 번만 해도, 아니 하다못해 천왕문에 와서 이름표 붙어 있는 거 한 번 보기만 해도 잘못한 줄 알겠다!! 이거 다른 설명도 뭔가 잘못된 점 있는 거 아닐까 하는 팜플렛에의 불신을 품고 경내 일주를 시작했다.
법당은 여럿 있었지만 역시 양식으로나 뭐로나 대웅보전이 제일 화려하더라. 어째서인지 법당마다 들어앉은 불상의 수인이 죄다 모르는 것 투성이라 혼자 뻘쭘해했다. 무어,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수인은 항마촉지인하고 지권인 정도지만. 뭔가 아담하게 서 있는 탑은 몇 번인가 허물어지고 해체되는 동안 이런저런 부분을 잃어버린 모양으로 원래는 9층탑이라는데 지금은 6층 밖에 없었다. 늘씬하긴 했지만 그 건너편의 허~옇게 새 거 티내는 석등보다도 빈약해 보여. 그 옆에 구멍 뚫린 석조물이 한 쌍씩 둘인가 셋인가 늘어서 있었다. 그것에 대해 공부한 것은 기억나는데 정작 이름이 생각이 안 나더라. 젠장. 깃대 같은 걸 세웠던 구조물이었던 것 같은데...
어쨌거나 목적이었던 동백을 향해 돌진. 대웅보전 뒤쪽에 조성된 동백나무숲은 소개문에서는 3천여 그루라고 하는데 그렇게 많아 뵈진 않았다. 꽃도 만개까지는 조금 남아 있는 것 같고. 무엇보다 철책으로 막아놔서 숲엔 들어갈 수도 없으니 가장자리에서 힐끔힐끔 보는 게 전부다. 그래도 불긋불긋한 동백들이 점점이 피어있는 모습이 좋긴 했다. 푸릇푸릇 새싹이 돋아나는 산야에 통째로 떨어진 동백꽃. 에헷. 누가 동백숲 아니랄까봐 새들이 끊임없이 지저귀며 여기서 퍼득, 저기서 푸득거리는데 한시도 조용할 틈이 없다. 사실 동백꽃보다 더 놀라웠던 건 동백나무. 여기 근처에서 볼 수 있는 동백은 대체로 관상용으로 정돈되거나 어딘지 허약하고 옹색한 녀석들이 많은데 큼지막하게 키를 키워 숲을 이루고 있는 걸 보니 진짜 나무는 나무더라. 튼튼한 아름드리 동백나무의 덩치에 왠지 모를 감동을 느끼며 주변에 옹기종기 피어있는 큰개불알꽃과 흰제비꽃과 민들레와 이름을 모르는 들꽃과 집념이 보이도록 쌓아올린 자그마한 돌무더기떼를 둘러보고 일단 동백 구경은 완료.
그리고는 어느 안내판이었는지 동백나무숲이 대웅보전 뒤에서부터 도솔암까지 걸쳐 있다고 본 것 같아 내친 김에 도솔암으로 출발. 결론부터 말하자면 낚인 거였다. ㅡ_ㅡ;; 산을 탄다고는 해도 별로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게 아니라 계곡 따라서 산기슭을 빼~앵 돌아 1.5Km 정도 걸었나. 사람길 찻길로 나뉘어 있어서 사람길을 선택했더니 당연하게 돌밭 나무뿌리등걸 흙길에 전날 내린 비가 제대로 흡수되지 않아 옆 비탈에서부터 줄줄 흘러내리는 통에 반은 진흙탕길...;; 돌아갈 때는 어느 정도 닦아 놓은 찻길로 갈 것을 다짐하면서 웅덩이를 겅중겅중 뛰어넘었다. 사실 신고 있던 신발만 튼튼했으면 괜찮았겠지만 이놈의 운동화가 방수가 안 되기 때문에 한 번 빠지면 뒤는 장담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기 땜시.
도솔암에 도착하니 동백나무숲은 개코도 보이지 않고... 크아, 속았다....하면서 극락보전 앞에 벌렁 나자빠져 있던 황구랑 백구를 만지작거리며 놀다가 바로 위에 마애불이 있다길래 보러갔다. 가던 도중 옆길로 잠깐 새서 나한전 뒤쪽으로 돌아 도솔암 내원당에 올라가는데, 다람쥐 두 마리가 옆 암벽을 타고 가다가 움찍 마주치더니 와글와글 통통 싸우면서 산을 올라가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귀여워라. 다람쥐 몸놀림 참 가볍다. 잽싸다든가 날렵하다든가 하는 말보다는 경쾌하고 탄력 있다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린다. 강아지나 고양이도 탄력성과 함께 어느 정도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데 다람쥐는 그게 전혀 없다.
꽤 가파르게 만들어 놓은 계단을 올라가 보니 지장보살송(...)이 주구장창 흘러나오고 있는 암자가 하나, 그 뒤쪽에 산신각이 있어서 에헷~하며 주저앉았다. 본사 영산전 뒤에도 산신당이 하나 있었지만 그보다 조금은 더 튼튼해 보였다. 위치 탓인가? 아니면 본사에 있던 산신당 쪽이 너무 허술한 거였나? 벌어진 판자 틈새로 바람이 생생 들어올 정도였으니까. 헌데 당과 각의 차이는 뭔지? 각 쪽이 좀 더 높고 넓은 느낌은 주긴 하는데. 어차피 보전은 붙이지 못할 산신의 셋집.... 당이나 각이나 그게 그거이려나. 하여간 산신 좋아~파인 나로서는 사람도 없고 잘 됐다 싶어 안에 들어앉으려다 진흙탕길을 푸셕푸셕 지나오는 바람에 너저분해진 바짓단을 생각해서 엉덩이부터 상체만 들여놓고 넋 놓고 쉬었다. 옛날엔 불당에서 잔 적도 있는데 뭐~하면서 떠가는 구름을 헤아리고 있자니 관리인 비슷한 분이 와서 그러고 걸터앉으면 안 되다고 쫓아냈다. 뭐라더라, 부처님에게 등을 보이면 안 된다든가, 뭐라든가. 내가 앉아 있던 건 산신 앞이고, 별로 등이 어쩌구 하는 건 상관없지 않을까 했지만 그냥 얌전히 물러나왔다.
왜 신 앞에서 등을 보이면 안 될까. 신이 사람 뒤에 있는 셈이 되는 거라서 그럴까? 머리 숙이고 경배할 수 없어서? 등 돌리고 모른 척 호박씨 깔까봐? 나로선 그냥 친근하게 지내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지만. 참, 남색신이라면 등을 보이는 쪽을 좋아할 것 같은.... 어.... 어.... 에이, 설마.
도솔암 내원당은 절벽 위에 만든 거라 전경이 꽤 트여 있었다. 뒤쪽으로 계속된 절벽 위에 바위를 깎아 뭘 조각해 놓은, 뭔가 제사라도 지낼 수 있을 법한 공간이 있는 걸 보니 기어 올라갈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으니까 포기. 대신이라고 해야 하나, 절벽 곳곳에 박혀 있는 은색 금색 동전들을 보며 피식피식. 거기에 동전 박아서 뭘 어쩌자구. 수를 보아하니 절벽에 동전을 붙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느니 아들을 낳는다느니 하는 얘기의 출처인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여기도~인 건가. 그러고 보니 본사 종루 밑에도 동전들이 꽤 널려 있었지. 미관상 썩 좋지 않은데 차라리 복전함이나 불전함에 시주하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 어느 쪽에도 할 생각 없지만 그래도 한다면 복전함 쪽. 관광지나 유적지 가서 동전 던지는 거 정말 싫다.
하여간 내원당에 본 선운산 풍경. 역시 우리나라 산들은 전부 바위라니까. 여기도 암벽, 저기도 암벽. 물줄기가 흘러내린 바람에 움푹 패인 길가 도랑을 보면 밑바닥이 전부 바위다. 아무 데나 적당히 파도 1~2m만 파면 돌층이 나올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 정도. 암석 분류를 읽어 본 것도 옛날 일이라 바위 이름을 댈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하여간 눈앞에 근처 산봉우리 - 천마봉이었나 - 로 올라가는 철계단이 보였다. 암석타기 대신 계단오르기다. 그리 멀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서울까지 돌아갈 체력을 생각해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높은 데서 보니 암벽 곳곳의 분홍 무늬들도 잘 보이고. 진달래 너무 좋아. 역시 진달래는 평지보다 산비탈이나 절벽 틈새에서 뻗어 나온 가지가 제맛이라니까. 역시 산이라서 동네 진달래보다 큼직...하지는 않고 키가 멀대 같은 녀석들이 많았다. 2m는 거뜬히 넘는 위치에서 꽃들이 살랑살랑. 헌데 줄기는 가늘가늘해서 다 지탱할 수 있는 건지 걱정이 되더라. 어떻게든 지탱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서 있겠지만.
내원당에서 내려와 마애불을 보러 갔다. 지금까지 본 마애불 중 제일 컸다. 경주 남산에서 본 마애불은 당시 귓가에서 진달래를 피우고 있었는데 이쪽은 구멍은 많아도 풀 한 포기 없는 모습이 살짝 대조적이었달까. 명치께의 구멍에서 비기가 나왔다고 하는데 지금은 시멘트를 발라놨는지 회색덩어리로 막혀 있다. 설마 저걸 자연적으로 막힌 거라고 하진 않겠지. 어차피 여기도 저기도 구멍 숭숭 뚫려 있는데 그냥 놔두지. 누가 올라가서 또 뭔가 꺼내거나 집어넣거나 할까봐 그러나. 그나저나 누각을 재현할 계획이 있었다던데 왜 그만 뒀지? 처음 추진할 때도 중단할 때도 이유는 있었겠지만 잠깐 와서 보고 가는 입장으로는 그저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이다.
정상으로 가는 건 포기했으니 산길이나 조금 더 타기로 했다. 마애불을 지나 계속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앞을 떠억 가로막은 장대한 암벽이 나타났다. 밑부분이 물에 침식되었는지 움푹 파여서 어둑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균형이 좀 무너져 보였지만 한 귀퉁이를 다른 집채만한 암석 하나가 지탱해 주는 형상이라 적당히 폐쇄적이고 적당히 개방적인 동굴 비슷한 거랄까. 여기도 암벽 위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물줄기가 가로막고 있는 공간 안쪽에는 무너져 내린 돌조각들이 무더기로 널려 있고, 그에 지지 않을 돌탑들이 또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참 돌탑들 열심히 쌓는다. 뭐, 동전던지기보다는 좋으니까. 얼마나 쌓아올려도 길거리의 돌들이 전부 사라질 일은 없을 테니까. 왜? 쌓는 사람이 있으면 무너뜨리는 사람도 있거든. 돌멩이를 잘못 올려서 균형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지만 고의적으로 건드리는 사람도 있다. 누구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그런 사람이 하나만 있을 리도 없고. 핫핫핫;;
도솔암에서 선운사로 돌아가는 길은 찻길로. 깊이 10여m 진흥굴과 높이 20여m 장사송은 그 쪽에 있었다. 역시 다양한 길을 이용해 보는 게 좋네. 마애불도 그랬지만 장사송은 너무 커서 사진 한 번 찍으려면 거리 잡기가 엄청 힘들겠다. 장사송 앞 정자 옆에서 배가 불룩한 삼색고양이 발견. 가까이 가서 만져보니 얌전한 게 산고양이나 들고양이 같지는 않고.... 배가 부른 것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딱히 살이 찐 건 아닌 것 같은데 임신일까? 설마 복수가 들어찬 건 아니겠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슬슬 진흥굴 쪽으로 이동하는 고양이. 그러다 중간에서 다람쥐가 출현하자 멈칫 발길을 멈추더라. 고양이를 발견한 다람쥐가 찍찍찍찍 요란하게 경계경보를 발령하는데 고양이는 모른 척 요지부동으로 기회를 노리는 듯? 어떻게 되나 보고 싶기도 했지만 둘의 운명은 하늘에 맡기고 하산했다.
내려가는 길에 언제가 될 지 모를 가을여행을 대비해서 꽃무릇 군락지를 체크하고, 선운사가 소장하고 있는 각종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성보박물관에 한 번 들렀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여전히 진흙으로 범벅이 된 바짓단이 걸려 그거 처리하느라 끙끙대자니 자동문이 계속 열렸다 닫혔다. 열심히 수고해 주는 자동문에 왠지 송구한 기분이 들었다. 들어가 보니 깔끔하게 전시해 놓기는 했는데 설명문이 있는 건 있고 없는 건 없어서 뭔가 미묘한 불균형이 느껴졌다. 여기도 천왕문의 실제 사정과 팜플렛의 설명이 달랐던 것처럼 어긋나는 게 있었던 것 같았는데 뭐였더라.... 음. 우리나라 행정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부서마다 따로 놀며 정보교환을 하지 않는 폐해의 단면을 본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면 단순히 내 선입관 탓인가, 편견 탓인가.
정문을 나오기 전에 쭉쭉 뻗은 우람한 나무들 사이에 자리잡은 부도들을 한 바퀴 돌고, 20분 여유를 두고 고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선운사와 정읍을 오가는 버스는 하루 4회라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 고창버스터미널에서 다시 30분 여유를 두고 강남고속터미널행 버스에 승차. 용산과 강남이라는 거리의 차가 있긴 하지만 무궁화보다 차비가 싸게 나왔다. 그렇게 딴짓은 요만큼도 안 하고 척척 이동해서 집에 오니까 9시 반 정도. 평일이라 버스도 기차도 고속도로도 어디도 여유만만해서 좋았다. 집에서 들고 갔던 땅콩샌드위치와 두유로 아침 겸 점심을 때우고, 중간에 산 옥수수와 우유로 점심 겸 저녁을 때워서 실제로 식비에 든 돈은 2100원. 데헷. 집에 와서 걸신을 대충 달랬다. 차비로 나가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이런 데서 아껴야지 별 수 있나. 거기에 혼자 돌아다니면 뭐 먹으러 들어가기도 만만치 않고. 참, MP3의 한계도 확인했다. 동시에 내 고막의 한계에도 도전한 셈. 내려가는 기차와 올라오는 버스 합해서 약 7시간 정도 재생. 처음 구입했을 때의 설명서로는 한 번 충전하면 10시간 재생 가능이었는데, 산 지 어언 3년이니까... 타당한 현상? 일년에 1시간씩 줄어든다면 앞으로 얼마나 쓸 수 있으려나.
하여간 이렇게 동백꽃 감상은 끝. 이걸로 쥐꼬리 같은 알바비가 들어올 때까지 알거지~☆
카메라도 없고 폰카도 쓸 만한 것이 못 되어 사진 한 장 남지 않았다는 약간 서글픈 후일담.
# by | 2009/04/15 13:15 |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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