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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세이야] 성역 편의점에 어서 오세요 <2>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허둥대지 마라, 애송이들아!”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올랐다가 차례차례 땅을 뚫고 처박히는 동료들의 모습을 목격한 백은성투사들은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스스로의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경쟁자가 줄어든 것이야 기쁜 일이지만 투사의 본능은 그것이 남의 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문을 연 가게에 아귀처럼 달려들다니, 예절교육이 전혀 되어 있지 않군. 사가 녀석은 대체 뭘 가르친 건지.”

개업기념 한정판매 이벤트를 선전하는 문자가 큼지막하게 박힌 현수막 아래 태산처럼 버티고 선 점원은 구덩이 속에서 경련하는 패배자들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교, 교황?”

“왜 교황이 편의점에?”

“그것도 연보라색 앞치마를 두르고!”

일순 전투태세를 갖췄던 백은성투사들은 점원의 정체를 확인하고 경악했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쳐버린 것은 교황의 위광 자체가 큰 탓도 있지만 돌연 주변의 공기 밀도가 빡빡하게 짙어지며 피부를 압박해 온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것이 시온으로부터 발산되는 소우주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기술이 풀려나온 다음이었다.

“크리스탈 월.”

마치 휘파람이라도 부는 양 가볍게 흘러나온 말이 강대한 소우주를 벽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며 편의점을 빙 둘러쌌다. 그 여파에 조금 동작이 굼떴던 백은 하나가 외마디 비명을 남기고 저만치 튕겨 나갔다. 크리스탈 월, 양자리의 황금성투사가 자랑하는 철벽의 방어막이다. 그 위압감은 조금 전의 ‘허둥대지 마라, 애송이들아!’에는 조금 미치지 못하지만 과연 전 성전에서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라 할 만 했다.

참고로 백은성투사들이 고의적으로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부분은 이것도 저것도 공격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슨 짓입니까, 교황!”

그러나 목표가 코앞인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헤라클레스자리의 아르게티가 용기 있게 항의하자 너나 할 것 없이 한 두 마디씩 불평을 늘어놓았다.

“개업하자마자 봉쇄라니 이런 비상식적인.”

“길을 열어주세요.”

“설마하니 혼자 독차지할 생각이신 건….”

“교황에겐 그다지 필요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유 없는 독재는 반대합니다.”

잠시 팔짱을 낀 채 ‘교황의 횡포’니 ‘권력남용’이니 ‘매점매석은 범죄!’니 하는 소리들을 듣고 있던 시온은 불만소리가 점점 높아지자 본의 아니게 크리스탈 월 안쪽에 남아있던 백은들을 하나하나 걷어차기 시작했다. 페르세우스자리의 알골, 켄타우로스자리의 바벨, 고래자리의 모제스, 케르베로스자리의 단테, 큰개자리의 시리우스… 백은 중에서도 내로라하는 실력 덕에 최초의 희생자가 된 그들이 크리스탈 월에 걸려 한 번씩 단말마를 질러주고 다 해진 걸레처럼 덜퍽덜퍽 떨어질 때마다 멀리서 숨을 죽이고 있던 청동 이하 잡병들의 고리가 움찔움찔 흔들렸다. 동시에 백은들의 입도 하나 둘 닫히더니 마지막으로 남은 마차부자리의 카펠라가 무참히 동댕이쳐질 무렵엔 그저 공허하게 뻐끔거릴 뿐이었다.

크리스탈 월 안쪽을 말끔히 청소한 시온은 바깥쪽에서 우왕좌왕하는 무리에게 코웃음을 쳤다.

“근성 없는 녀석들, 그러고도 너희들이 아테나의 성투사라 말할 수 있겠느냐.”

당신과 정면으로 맞설 바엔 맨몸으로 하데스에게 덤비겠습니다, 라는 변명은 모두의 입안에서만 맴돌다 사라졌다. 잘못하면 정말로 명계행이다. 사가의 난 이전에 교황으로서 군림하고 있던 시온과 만날 기회가 없었다고는 하나 저 세상에서의 경험과 부활 후 지금까지의 접촉만으로도 충분히 실현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올바른 판단이었다.

“뭐, 좋아. 앞으로 철저히 두들겨서 단련시키면 될 일이니까. 오늘은 편의점 점원으로서 너희들에게 명한다.”

“예, 옛!”

뭔가 굉장히 무시무시한 말이 섞인 것도 같고, 뭔가 굉장히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자리한 것도 같았지만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시온의 말투는 당당하고,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위엄과 권위가 서려 있었다. 기가 바짝 선 백은성투사들은 반사적으로 자세를 바로 했다. 시온은 출진 명령이라도 내리는 듯 팔을 휘두르며 근엄히 외쳤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실력으로 쟁취해라!”

“옛!”

우렁찬 함성이 울려 퍼졌다. 직후, 자신들이 무슨 말을 들었고 무슨 대답을 했는지 깨달은 백은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시, 실력?”

“실력, 입니까?”

“실력이라….”

“아니, 저, 편의점에서 필요한 것은 돈….”

“실력이다. 돈은 그 다음.”

시온의 말에는 가차가 없었다.

“그 말씀인즉, 눈앞의 장애물 = 교황을 넘어뜨려라, 라는?”

“그렇다.”

매우 정당한 발언을 시도했던 까마귀자리의 쟈미안이 설마하며 되묻자 타협의 여지가 없는 단언이 되돌아왔다. 머리 위에 날벼락이 떨어진 백은들은 절규했다.

“그런, 말도 안 됩니다!”

“30 대 1의 대결이다. 뭐가 불만이냐.”

“벌써 반은 탈락했단 말입니다!”

“그것도 그렇군. 그럼 크리스탈 월을 깨는 선에서 인정해 주마.”

크리스탈 월과 백은들 사이에 첩첩이 쌓여 시체놀이 중인 탈락자들을 새삼 인식한 시온은 선심 쓰듯 양보안을 내놓았다. 안심한 분위기가 깔린 것도 잠시,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조건에 백은들이 다시 아우성쳤다.

“그래도 무리입니다!”

“교황, 연세를 생각해서라도 자중해 주세요!”

“반사된 자신의 공격을 먹고 쓰러지는 얼간이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어째서 편의점에 가는데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됩니까!”

문득 시온의 양미간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불호령이 떨어졌다.

“시끄럽다! 성투사의 생활은 어디까지나 수행과 훈련의 연장. 하데스나 포세이돈 외에도 호시탐탐 지상을 노리는 적은 얼마든지 있다. 성전이 끝나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고 해서 그렇게 해이해진 정신 상태로 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도 할 말이 없으렷다! 차라리 그 전에 내 손에 죽어라!”

왠지 모르게 이야기가 마구 비약하자 백은들은 당황했다. 평정을 유지하려 해도 통할 상대가 아니다. 애초에 그를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여신 아니면 시온과 같은 세월을 살아온 천칭자리의 황금성투사 정도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것은 최대한 안전지역까지 대피해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구경꾼들이었고, 정작 당사자들은 머리에서 핏기가 싹 빠져나가 그조차도 떠올리지 못했다. 허나 썩어도 백은성투사, 순순히 물러서진 않는다.

“그렇지만, 교황!”

“이의 있습니다!”

“이 편의점은 저희들의 복지를 위한 시설 아니었습니까?”

“맞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편의점입니까!”

이구동성으로 따져오는 백은들의 후방에서 청동 및 잡병들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귀추가 주목되는 순간, 크리스트 월의 투명한 황금빛 속에서 점원 차림의 교황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효율적인 동기부여와 훈련과정의 다양화를 위해서다.”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희미하게 감돌던 기대가 무참히 박살나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시온은 할 말을 잃고 망연히 서 있는 백은들을 향해 회심과 한심과 훈계와 도발을 적당히 섞어 말을 던졌다.

“그래서 그대로 물러날 생각이냐? 아테나께서 직접 만드신 샌드위치를 포기하고?”

흠칫, 백은들이 요동했다.

“여신의 가호가 담겨 있어 한 번 먹으면 일정시간 동안 능력치가 랜덤으로 1.5배가 되는, 선착순 5개 초특한정상품이다.”

풍덩, 백은들 사이로 파문이 일었다.

“그 중에서도 특별한 가호가 담긴 상품의 경우 본인의 소우주와의 연동에 따라 최고 3배까지 능력치를 올릴 수 있어 오후에 예정된 모의전투에 큰 도움이 될 터인데.”

철썩, 백은들의 소우주가 파도를 일으켰다.

“명예와 금일봉과 포상 휴가, 그것을 뒷받침해 줄 영광스런 아이템. 어느 쪽이든 실력으로 쟁취해라!”

짧지 않은 침묵 뒤, 백은성투사들의 공격적인 소우주가 하늘 높이 불타올랐다. 아테나의 가호를 받은 식품의 효력은 이미 입증된 바, 여기서 분쇄되든 모의전투에서 거꾸러지든 모 아니면 도다. 오히려 시온을 상대로 최후의 원자까지 연소시키는 편이 뒤끝도 깨끗하니 미련을 버릴 수 있다. 거기에….

“미리 말해두지만 너희들이 이 벽을 뚫지 못하면 내 근무시간이 끝날 때까지 편의점은 이 상태인 채다.”

시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뒤쪽에서 간절하고도 강렬한 애원의 소우주가 해일이 되어 백은들을 엄습했다. 등을 꾹꾹 떠다미는 듯한 굉장한 부담감이었다. 백은들이 쓰러지면 그들만으로는 희망이 없는 것이다. 신성의를 지니고 있는 청동성투사라면 또 모르지만 현재 성역에 없는 그들을 찾는 것보다 시온의 근무시간이 끝나는 것을 기다리거나 황금성투사들에게 매달리는 편이 빠를 것이고, 그게 또 꽤 미묘한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했다.

배수진에 몰린 백은성투사들은 소우주를 높이며 각오를 다졌다. 설령 이것이 하나부터 열까지 교황이 기획한 판촉행사의, 아니 수행의 일환이라 해도 피할 수 없다면 아련한 희망을 품에 안고 전력으로 부딪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인간의 삶에서 육체의 최전성기라는 18세 전후로 포진되어 있는 피 끓는 백은성투사들은 시온 또한 팔팔한 18세의 육체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비장히 돌진했다.

그리하여 꼬박 반나절을 소비한 공성전 아닌 공성전 끝에 실질적인 편의점 영업이 시작되었으니, 결국 여신의 샌드위치와 모의전투에서의 승리를 거머쥔 이는 한 발 물러난 위치에서 냉정히 사태를 관찰하여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최종고지를 획득한 독수리자리의 백은성투사 마린이었다고 한다.

by 벽효-아리수 | 2008/11/27 20:47 | ├ 황금보완계획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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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wldms*6 at 2010/11/30 02:20
태그대로 교황님은 최강입니다!! 장열하게 쓰러진 백은들에게 명복(?)을 ㅎㅎ
Commented by 벽효-아리수 at 2010/11/30 13:49
그 말썽 많고 개성적인 애들을 다스리는 사람이 아닙니까. 교황님은 언제 어디서나 최강입니다. ^^
Commented by 칼칼 at 2015/02/26 16:43
전우의 시체를 넘었다뇨?
시온이 백은성투사를 죽였단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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