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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넘버 0007

아리에스여, 라이브라의 입술을 훔쳐라!!



 

비취빛 지중해에서 태어난 신선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한낮의 성역. 까마득한 신화의 시대부터 지상을 지켜온, 아테나의 성스러운 소우주와 교황의 장엄한 소우주가 항시 감돌고 있는 거룩한 곳이지만 가끔 일부에서 불순한 기운이 아물아물 피어오르기도 하니, 이름하야 애욕의 소용돌이라 하는 것이다.

멀리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언덕 위. 훈련을 마치고 점심을 먹을 자리를 찾던 동호는 완만하게 경사진 풀밭 위에 도시락을 내려놓았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들꽃의 어렴풋한 향기가 산들바람에 실려 코끝을 간질이고, 구름에 반쯤 숨은 태양이 보내는 따스한 햇살이 머리카락을 어루만진다. 그 온화한 분위기 탓일까. 바다의 반대쪽에 펼쳐진 드넓은 성역의 전경을 바라보던 동호의 눈이 차츰 가늘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자세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다시 바람이 분다. 동호가 있는 자리만 살짝 비켜간 그 바람은 몇 줄기로 나뉘어 풀잎 밑의 메뚜기, 꽃잎 위의 나비, 땅굴 속의 두더지, 머리 위의 갈매기 등등을 모조리 채갔다. 개미 한 마리, 굼벵이 한 마리 놓치는 법이 없었다. 잠시 후, 생명력이 가득하던 언덕은 죽음의 정적과도 같은 음침함이 낮게 깔린, 굉장한 곳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동호는 깨지 않았다. 수행으로 지친 탓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그의 주위에 아테나의 가호가 내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잔디는 푸르고 하늘을 파랗고 구름은 희고 바다는 잔잔하고 햇살은 따사롭지만 풀 한 포기 없는 폐허와도 흡사한 공기가 흐르는 그 곳에 이윽고 한 사람이 나타났다. 동호와 함께 점심을 먹기로 약속한 시온이다. 약속 장소의 괴이함과 그 속에서 꿈나라를 여행 중인 친구를 본 시온은 동요라기보다는 긴장으로 얼굴 근육이 굳어져 간다. 그리고 그 뒤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 물고기, 전갈, 염소 등등의 수상한 그림자가 있었으니….

"1단계 완료. 아리에스, 준비는 됐나?"

"…응."

작전지역의 움직이는 생명체가 모조리 소거된…이 아니라 피신한 것을 확인한 후, 황금성투사들은 일제히 소우주를 불태우며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카프리콘이 엑스칼리버로 동호와 시온이 있는 장소를 사박사박 갈라내 주변과 완전히 분리시켰다. 상당한 거리이긴 하지만 성투사라면 어떻게든 건널 수 있는 넓이. 고로 대비책 하나, 고립된 대지의 건너편에 무수한 흑장미-피라니안 로즈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걸 잘못 넘으면 전신이 와해된다. 대비책 둘, 고립지의 주변공간이 기묘하게 일그러지며 정체 모를 흰 빛줄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텔레포트 방지를 겸함 것으로 자칫 잘못하면 이차원에 떨어지거나 황천에 직행할 것이다.

"좋아. 2단계 완료."

"가라, 아리에스!"

"성공을 빈다!!"

황금성투사들의 비장한 격려를 받으며 시온은 크게 한 발을 내딛었다. 그리 씩씩하지 못한 걸음걸이 끝에 살짝 무릎을 굽히고 머리를 숙이자 조용히 잠들어 있는 옆얼굴이 바로 눈앞이다. 중국인인 동호는 티베트인인 시온과 동갑이면서도 상당히 어려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시온은 두근두근 방망이질치는 심장을 꾸욱 눌렀다. 방해받을 염려는 없다. 구경꾼이 너무 많은 것이 걸리지만 못해 보는 것보다는 낫다. 여신의 허락 하에 하는 짓이니 무엇이 두려울 소냐!

그러나… 세상일이란 게 생각대로만 흐르는 것이 아닌 법. 여신의 가호로 이상현상은 감지하지 못했지만 바로 옆의 불온한 기색에 자극을 받은 동호는 끔벅 눈을 떠버리고 말았다. 잠이 덜 깼는지 잠시 멍하게 주변을 둘러보던 동호는 시야에 들어온 시온의 얼굴에 활짝 웃었다.

"아, 왔구나. 시온."

"응? 으응…."

“많이 잤어, 나?”

“아니, 별로.”

최초의 기회를 놓친 것보다 그 웃는 얼굴에 더 당황한 시온은 태연한 대응과는 달리 속으로 마구 허둥대고 있었다.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황금들은 아랑곳없이 다음 행동을 개시했다.

"3단계 작전 돌입."

기운차게 일어나 도시락을 펼치던 동호의 몸이 따다닥 소리를 내며 굳었다. 동호는 전신에 퍼지는 따가운 통증에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아니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스콜피온의 리스트 릭션에 걸렸다는 걸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뭐야, 이거?"

그래도 억지로 움직이려는 동호의 발 밑에 소름끼치게 차가운 기류가 흐르더니 순식간에 발이 얼어붙었다. 아쿠아리스의 냉기다. 그제서야 주변 사정을 파악한 동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아쿠아리스? 스콜피온? 저 장미는 피스케스? 저 공간은 또 뭐야?"

"그게… 약간의 사정."

"사정?"

"……그래, 어쨌든 하고 보는 거야."

망설임은 있었지만 뒤에서 열렬히 응원하는 소우주를 등에 업은 상태다. 게다가 상대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 남자의 자존심이 걸린, 그만둘 수가 없는 상황이다. 나아가든 물러서든, 무엇을 선택해도 나중이 무섭다면 하고 싶은 쪽을 하는 것이 낫다. 시온은 마음을 굳게 먹고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애쓰는 동호의 어깨를 턱 잡았다. 도움을 청하듯 자신을 보는 도코의 시선이 못내 가슴을 찔렀지만 눈 딱 감고 무시다. 시온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최종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아니, 돌진하려고 했다. 뭔가 채인 느낌과 함께 덜컥 소리가 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불길한 예감에 부리나케 고개를 숙인 시온은 자신의 무릎에 채여 엉망으로 쏟아진 점심메뉴와 데굴데굴 굴러가는 빈 도시락통을 보고 창백해졌다.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진동에 핏기가 싸악 가신 시온은 주춤주춤 떨어지려 했지만 각박하게 조여드는 공기가 그것을 허락지 않았다. 황금들의 뒷공작으로 인한 정적보다 한층 무거운 정적이 깔리고, 역시 창백해진 흑장미 속의 황금들이 살금살금 몸을 빼려는 찰나, 동호의 소우주가 크게 폭발하며 세븐센스를 넘어 초광속으로 발산되었다.

"음식을 소홀히 다루지 말라고 했잖아!!!"

길은 예상 이상으로 멀고도 험했다.

 

 

 

⊙ 황금보완계획 ; 파일넘버 0007 ; 아리에스여, 라이브라의 입술을 훔쳐라!!

 

동원 황금 ; 제미니, 켄서, 스콜피온, 카프리콘, 아쿠아리스, 피스케스

 

결과 ; 실패. 노산백룡패의 폭주로 아리에스와 동원황금이 이차원과 황천에 떨어짐. 음식에 트라우마가 있는 라이브라를 상대로 점심시간을 선택한 것이 패인. 차후 계획에선 음식이 관련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


by 벽효-아리수 | 2005/12/25 19:58 | ├ 황금보완계획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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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무량한빛 at 2008/11/19 11:54
이럴수가.....엄청난 응원을 무려 아테나와 다른 황금세인트들의 응원의 소우주의 힘에도 불구하고 그도시락이 문제였었군요 ㅠㅠ
아아..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맥이 마구마구 빠져요 ㅠ0ㅠ
차근차근 읽고 있습니다. 너무 즐겁게 읽고있습니다. 답글 너무 감사드려요>ㅅ<!!!
Commented by 벽효-아리수 at 2008/11/20 09:17
저야말로 댓글을 달아주셔서 정말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파일넘버 시리즈는 명왕하데스십이궁편 OVA가 나오기 전에 쓴 거라 지금 보면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을 뿐입니다. ^.^;;
저희 동호는 극한의 기아체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먹을 것에 매우 민감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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