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23일
파일넘버 0
"아리에스, 뭘 하고 있어?"
갑자기 귓전에 대고 속삭여 오는 저음의 목소리에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놀란 아리에스 - 시온은 순간적으로 입을 막아 심장과 비명을 꿀꺽 삼킨 후에야 목소리의 주인을 노려볼 수 있었다.
"피스케스…. 남의 뒤로 몰래 다가오는 건 그만둬!"
"남이 노는 것을 몰래 훔쳐보던 녀석이 할 말은 아니구나."
"알면 처음부터 묻지 마!! …앗차!"
그만 큰소리를 쳐버린 시온은 자신의 소리에 놀라 허둥거리며 몰래 엿보던 쪽을 살폈다. 그 모습이 마치 고양이 건너편에 있는 먹이를 보고 전전긍긍하는 생쥐 같아 피스케스의 미소를 자아냈다. 저 쪽에선 이 작은 소동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변화가 없다. 가슴을 쓸어내린 시온은 뱅글 뒤로 돌아 소리 없이 웃고 있는 피스케스의 발등을 힘껏 밟아주었다. 생쥐에서 고양이로 돌변한 모양이다.
"아야! 이 녀석, 진심으로 밟았냐?"
"조용히 해."
자신보다 나이도 어리고 키도 작은 상대치곤 내려다보는 듯한 차가운 위압감이 무겁다. 그것에 진 것은 아니지만 피스케스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최연소 황금성투사, 목양좌의 시온. 88성투사 최강의 염력 소유자이며 유일한 성의수리공이기도 한 그에게 잘못 보이면 성의가 부서져도 고칠 수가 없다. 그야 황금성의가 부서지는 일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라지만 여차할 때 곤란하다. 얌전해진 자신을 무시하고 다시 엿보기에 열중하는 시온의 귓전에 이번엔 한숨이라도 불어넣어 줄까 생각하던 피스케스는 화기애애한 대화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시온과 똑같은 최연소 황금성투사인 라이브라 - 동호와 켄서와…
"오늘도 기분이 좋은 것 같군, 제미니는."
"어‥엉?"
"사지타리우스?"
돌연 등 뒤에서 부러움이 몽글몽글 묻어나는 소리가 흘러 등골이 오싹해진 시온과 피스케스가 조심조심 고개를 돌려보니 예상대로의 인물이 뭔가 멍한 얼굴로 저 편을 보고 있었다.
"나 참. 배후령 같은 놈이구나."
"왜 여기로 오는 거야?! 엿보려면 다른 데로 가!"
"아니, 별로 엿보려는 게 아니라 너희들이 이상한 걸 하고 있어서."
확실히 팔팔하게 생긴 소년과 청년 둘이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긴 채 궁시렁거리는 모습은 꽤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내가 뭘 하든 상관하지 마!"
"하지만 아리에스, 엿보기보단 함께 놀면 어때?"
"그래, 스토커 같다구. 네 뜨거운 시선 때문에 라이브라, 밤에 악몽을 꿀 지도 몰라."
"사돈 남 말 하는군. 너희야말로 제미니와 켄서를 보고 싶어서 나한테 빌붙는 주제에!"
시온의 확신에 찬 야유에 사지타리우스가 움찔한다. 아픈 곳을 찔렸기 때문이리라. 사지타리우스는 피스케스를 보았다. 피스케스도 사지타리우스를 보았다. 그리곤 동시에 히죽 웃는다.
"…피스케스. 역시 여기서는 연장자로서 후배에게 예의라는 것을 가르쳐 줘야겠지?"
"…물론이지, 사지타리우스. 선배의 의무를 소홀히 해서야 여신께 죄송스런 일이지."
"…이 방해꾼들이 아주 작정을 했군. 좋아, 오늘이야말로 끝장을 내겠어!!"
대자연을 만끽하는 상쾌한 호흡운동을 즐기며 각종 미술품에 나타난 그리스 신들의 복식문화에 대해 의견을 나누던 동호와 제미니, 켄서는 그다지 멀지도 않은 곳에서 화르륵 타오르기 시작한 세 개의 거대한 소우주를 느끼자마자 곧 일어날 사태를 직감, 멀찌감치 몸을 피했다.
"저 하늘의 별이 되어라! 스타더스트 레볼루션!!"
"건방지구나, 아리에스! 장미의 향에 취해 잠들어라! 로얄 데몬 로즈!!"
"이런 것을 바로 사랑의 매라고 한단다! 온몸으로 받아봐라! 아토믹 썬더볼트!!!!"
쿠과과과과광!!!!! 우당탕탕탕탕!!!!!!!!! 콰르르르르르르릉!!!!!!!!!!!!!!!!
"시온… 또냐……."
"저것들, 이차원에 날려버릴까? 날마다 이러면 성역이 남아나질 않겠어."
"그보다는 황천으로 보내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정말 질리지도 않고 싸워댄다니까."
"성투사의 선악을 판단하는 자로서 저 녀석들을 재보면 어때, 라이브라? 무거운 녀석부터 저 세상으로 격리시켜 주지. 아, 저울자리가 하나 부족한가?"
"시시한 일에다 라이브라의 황금성의를 써먹으려 들지 마, 켄서."
"제미니 너, 그게 꼭 네 것인 양 말한다?"
일상다반사에 대한 세 사람의 반응은 말과는 달리, 아니 말과 마찬가지로 무척 태평스러운 것이었다. 이유야 어떻든 크고 작은 폭발이 끊이지 않는 곳이 성역이다. 정의를 지킨다는 대의에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피가 끓는 전사들의 집단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주먹 한 두 발이 오가는 사소한 시비 정도,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다. 단, 그것이 황금성투사가 되면 주먹 한 발이라도 피해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된다. 때문에 예산을 걱정해야 하는 교황은 황금성투사끼리의 사투를 엄하게 금지하고 있지만 말로 해서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이 있는 법이다. 게다가 이 경우, 사투라기보다는 유치한 애들 싸움, 잘 봐줘야 동료들끼리 약간 거친 커뮤니케이션을 즐기는 것이므로 보는 이들은 심각해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 사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자들이 있다. 누구라도 자신의 두 다리로 걸어 12궁과 교황궁을 통과한 다음에야 다다를 수 있는 성역 중의 성역, 아테나 신전. 대지를 가르고 하늘을 깨트릴 기세로 울려 퍼지는 갖가지 굉음을 신호삼아 모인 여신과 교황과 나머지 황금들은 화려하게 번쩍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중대한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또…로군요?'
"예, 아테나. 아리에스와 피스케스가 라이브라와 켄서, 제미니를 스토킹하다 공연히 참견한 사지타리우와 소동을 피우고 있습니다."
"스토킹당하는 쪽도 문제입니다. 그들이 왜 싸우고 있는지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아리에스의 태도가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한 게 벌써 한 달 전이건만 라이브라는 전혀 모르는 모양입니다.“
“동양 출신이라 그런지 성장이 느리달까, 아직 사춘기도 오지 않은 것 같고요."
"쟁점은 아리에스와 라이브라입니다.“
"나머지는 자신들끼리 어떻게든 하겠지요."
"사지타리우스도 슬슬 인내력이 바닥나고 있는 모양이니까요."
"특히 라이브라와 제미니는 친한 사이가 아닙니까. 이대로는 언제나 방해받는 아리에스가 제미니에게 앙심을 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잘못하면 황금성투사 사이에서 심각한 삼각-사각관계가 태어날 위험이…."
황금성투사들의 기탄없는 발언은 끝이 없었다. 약간의 과장이 섞이기도 했지만 틀린 말들은 아니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며 사태를 정리한 여신은 마침내 결심했다.
"좋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성전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성역파괴와 성투사들의 분열은 곤란합니다. 성역의 주인으로서 나 아테나, 황금보완계획의 실행을 여기서 선언합니다. 아리에스와 라이브라의 러브러브 공인을 위해 진력합시다!! 지상에 정의를, 성역에 평화를, 십이궁에 넘치는 사랑을 위하여!! 다들 알겠습니까?"
"예! 아테나!! 지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오늘의 성역. 이렇든 저렇든 소우주를 높이고 있는 황금들과 여신이었다.
⊙ 황금보완계획 ; 파일넘버 0 ; 지상과 성역의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위해!!
개요 ; 꽃다운 15세의 아리에스가 사랑에 눈을 뜸. 그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소동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아리에스의 짝사랑을 이루어주자는 취지에서 발족. 앞으로 이 파일이 얼마나 두꺼워질지가 기대됨.
# by | 2005/12/23 15:08 | ├ 황금보완계획 | 트랙백 | 덧글(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